08 March 2007

오랜만의 외출

병실과 집에 쳐박혀 있는 사이 밖에서는 날씨가 널뛰기를 하는 줄도 몰랐다.
봄 같은 겨울에는 안에만 있어 몰랐는데 밖은 겨울 같은 봄날이었다. 3월도
중순에 함박눈이라니. 세탁소에서 찾아 온 겨울 옷을 입으면서 이거 너무
오버 아닌가 싶었는데 스키바지 안 입고 나간 게 후회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둘둘 말고 다녀 털이 잔뜩 달린 내 겨울 옷차림이
어색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청담동엘 나갔다. 그 사이 변한 건 없는 데 길들이 어찌나
헷갈리던지. 시간 맞춰 나갔는데도 헤매다가 15분이나 늦었다.
만남은, 음..., 아주 좋았다. 그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같이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만나면 편해서 수다스러워진다. 이젠 낯간지러운 자랑도
막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참나. 사람 관계라는 게. 콩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게 될 줄 알았는데 작설차를 제일 큰 컵으로 마셨다. 원래도 이 메뉴가
있었는 지 최근에 추가됐는 지는 모르겠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티백차였지만 텁텁하지않고 맑은 게 딱 좋았다. 요즘 내 사는 게 참
막막했는데 속시원히 털어 놓으니 걱정이 마치 다 사라진 느낌이다.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들었다. 멘토, 이런 거창한 거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가끔 만나 이런 기분 드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은행카드 유효기간이 얼마 안남아 이걸 어떻게 늘일까 고민하다
은행에 가서 이거 카드 안돼요, 마그네틱이 손상됐나봐요, 했더니
'즉발카드'가 있다며 잠시 기다리란다. 새 카드는 별로 써먹을 기능 없이
단순한 것으로 바뀌었고, 유효기간은 2012년으로 늘어나 있었다. 야호~~.
카드를 교체하면 한 보름은 기다릴 줄 알았다. 게다가 나같이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한테 새로운 카드를 발급해줄 금융기관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거나 숙제 하나 또 덜었다.

집에 오다 드러누워있던 병원에 잠깐 들렀는데 경과가 아주 좋단다.
오늘은 뭐가 이렇게 다 좋지?

비행기표를 바꿨다. 수요일 밤비행기가 아니라 낮 12시 비행기다.
작가 친구는 취직이 되어서 이날 못 나오게 됐단다. 이렇게 사이클이 맞을
수가. 약속을 미루는 게 미안하던 차였다. 스님 친구한테 연락했더니 그럼
전날 보잔다. 그래서 다 같이 전날에 만나기로 했다. 이것도 좋은 거 맞지?

방을 비워놓으라고 연락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꼭 비워놓을 테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럼, 가고 말고. 거기 아님 내가 지금 갈 데가
없거든. 같이 일하자는 데서도 연락이 왔다. 조건을 들어보자고.
그럼 그럼, 가고 말고. 내 코가 석자거든. 이력서를 쓰면서 내가 일본에서
이 짓을 앞으로 몇 번이나 할까 했었는데 뜸안들이고 연락들이
바로바로 와서 어제의 기분을 보상받는 것 같다.

그래, 신은 언제나 내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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