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좀 꾸무럭하더니 기어코 새벽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우산을 들기에는 좀 억울한 그런 가랑비가 내린다.
안 쓰면 젖는 줄 모르게 옷이 젖는 그런 비.
아, 요 비가 그치고 나면 이제 정말 내복을 벗어도 될 것 같다.
요시에 친구(까먹었는데 이름을 다시 못 물어봤다.)가
이 게스트하우스에 나 말고 한국인이 한 명 더 있다는 얘기를 했다.
누굴까, 그러고 있었는데 어제 드디어 만났다.
그러나 완전 한국인은 아니고 자아정체성으로 고민 꽤나 했을
그런 친구였다.
처음엔 한국어를 조금밖에 못하는 일본인이라고
소개하더니 한국어를 읽는 것, 말하는 것에 불편함이 없단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더니 일본이 물가도 비싸고
일본 생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단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냐고.
그럼 일본인도 아닌가. 어, 일본어는 완벽한 일본인이었는데...
게다가 한국어 억양이 일본인 억양이 아니었다.
조선족이 하는 한국어 억양 같은데 본인이 일본인이라는데 뭐.
중국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중국에 있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이게 뭐냐고.
머리를 막 굴렸다. 일본인이 일본 생활에 스트레스를 왜 받아?
일본 물가 비싼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남 일에 참견을 안 하는 이곳 문화때문에
한국인들은 좀처럼 일본 생활에 스트레스를 안 받는데...
역시나 중국인?
그럼 그렇지.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란다.
중국 대련에서 죽 살다가 5년 전에 일본에 왔단다.
직장내 은근히 외국인 차별이 심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사람들 만나면 자기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는단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서 아예 얘기를 안한단다.
이상하게 나를 보면서 그냥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았단다.
내가 왜, 어디가 어때서, 그런 맘이 든 거지?
어쨌거나 실토를 하지 않아도 중국에서 건너 온 사람이란 건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한국인 피가 섞여 있을 것 같기도 했었다.
억양에서 또 대화 내용에서. 그리고 말하는 스타일에서.
어찌나 꼬치꼬치 캐묻는지. 심지어 아주 개인적인 일까지.
여기서 만난 어떤 일본인도 내가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지
학교를 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덕분에 여기와서 처음으로 한국말을 실컷 했다.
어딜 나가서도 아직 한국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거든.
이름은 리리고 한국 이름은 원기영.
대화는 일본어로 하잔다. 나야, 어느 나라 말로 해도 아쉬울 게 없지 뭐.
오늘 토익 시험을 보러 가는데 앞으로 영어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뜬금없이 그러는 거 아닌가. 엥?
자기는 이제까지 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한 적이 없단다.
여기서 만난 애들 보면 유학파들도 있고, 학교에서 조금씩은
영어를 경험한 아이들 같은 데 자기는 그런 적이 없어서
그 아이들이 부럽댄다. 중국은 학교 교육 과정에 영어가 없나?
어쨌거나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네이티브가
아니란 건 알아달라고 그랬다.
한국어 가르치면서 돈 벌려고 했는데 졸지에 영어 선생 일을
먼저 해야 될 것 같다.
그나저나 국제결혼을 하게 되면 아이가 리리처럼 될 것 같은데
참 고민이네. 그냥 세계시민으로 살아라, 그렇게 얘기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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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통일교에 위장 개종해. 세계가정을 주장하거든. 당신이야 말로 전도 선봉장이지. 아마 장학금도 지원해줄지 몰라...
통일교가 그래? 그래도 그렇지...그런거 말고 좀더 합리적인 방법 없나?
어쨌거나 나, 내일 방콕 가. 인테리어 잘 해놔. 알았지? 결혼준비한다고 나 소홀히하면 안돼. 당신 내 매니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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