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낸 짐들이 도착을 해 걸 건 걸고, 쌓을 건 쌓아
이제 거의 정리가 된 것 같다. 오늘 '無印良品'이라는 가게에 가서
앉은뱅이 책상을 하나 사왔다. 꾸부리고 뭘 하려니 어찌나 등짝이 아프던지.
다 조립이 된 거라 가져와 네 다리만 쫙 펴면 되었다.
공부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난 이상하게 어딜 가면
책상을 하나씩 샀던 것 같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도 내 책상이 있다.
강원도 화천의 용화장에도 하나 있고. 이제 도쿄에서도 하나 장만했다.
침대가 높아 책들은 침대 아래에 쌓아놓았다. 책꽂이는
따로 필요없을 것 같다. 내 방만 침대가 높다는 데 이유는 모르겠다.
마치 해먹에서 자는 기분이다. 물론 해먹보다는 바닥이 평평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짐정리한 기념으로 그동안 버벅대던 노트북도 완전 대청소를 했다.
그렇게 백업할 시간을 내려해도 좀처럼 생기지 않았었는데 금방이었다.
소프트웨어도 버전 높은 걸로 싹 깔았더니
이젠, 이 컴퓨터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건방진 생각이 든다.
노트북 청소 기념으로 오늘 글 하나 남긴다.
방에 아무것도 없을 때는 썰렁했는데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다.
페인트칠 냄새도 거의 사라진 것 같고. 바닥이 카페트가 아니라 장판인데
무늬가 목재같은 느낌이 나서 아주 좋다. 자꾸 좋은 것만 생각하니까
이 공간이 좋아지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 건물 3층에
내 방이 자리잡고 있고, 화장실이랑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한다.
부엌도. 집기들은 다 마련이 되어 있어서
재료만 사서 음식을 바로 해 먹을 수 있다. 3층짜리 집에 살면서
1층의 부엌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니 그리 불편한 것 같지 않다.
처음에 아무대책없이 이 집에서 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역시 신은 내편인 것 같다.
어제 오오츠키(아무래도 한자를 ' 大月' 요렇게 쓰지 않을까.)라는 친구와
처음으로 인사했다. 스쳐지나가는데 굳이 다시 불러,
나는 오오츠키라고 해, 라고 해서 나도 이름을 알려줬다.
이 건물에 한 50명 정도가 사는데 오늘까지 10명도 다 못 만났다.
오전에 책상을 사러 가려고 집 앞에서 만난 아가씨한테
길을 묻는데 발음이 약간 이상해 중국인이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왕추안페이. 가수 왕페이랑 한자가 똑같다.
가운데 추안은 한국식 한자로 내 '천'을 의미한다.
텐진 출신인데 교환학생으로 와 있단다. 그 학교 시스템은
2년은 지네 학교에서 2년은 다른 나라 학교에서 공부해 학점을 합산한댄다.
장학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은 불편하지 않은데 학교가 후져
공부할 맘이 없댄다. 이곳에서 대학원에 다니고 싶은데
내가 다니게 될 학교에 갔으면 좋겠단다.
얼른 공부해서 오라고 교만하게 충고했다.
자기방은 112호인데 내 방은 몇호냐고 대뜸 물어봐서
아무생각없이 알려줬다. 놀러오겠다는 건가? 와봤자 별 거 없는데...
첫날 역에까지 가는 건 성공했는데 돌아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거의 한시간을 헤매며 이곳의 지리를 다 익힌 덕에 이제 아무 길이나 빠져도
게스트하우스까지 올 수 있다. 참 신기하지. 인간의 귀소본능이란...
오던 날은 으슬으슬 추운 날씨였는데 낮엔 완전 봄이다.
담 위로 목련이랑 사쿠라가 활짝 펴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학교가 있는
쿠니타치도 그렇고 봄이 되면 일본열도 전체가
미치기 좋을만하게 사쿠라가 지천으로 핀다. 올해도 역시 그렇겠지.
천지사방으로 사쿠라가 만개하기 전에 카메라를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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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사진이 보고 싶구마잉~
역시 이미지 랍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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